두 번째 만남
김태원
=======================
I
사람이 되어 돌아와 보니
기다렸던 그대는 떠나 버렸다
길고 검었던 밤을 지나
돌아와 보니
빈들에 풀잎이 시들어가고
바람만 가득차 있었다
여기 누가 씨앗을 뿌려 놓았던 것일까
온통 사람의 길 위에
욕망의 그림자를 길게
눕히고
감추려했던 가시를 돋아나게 한 것일까
긴 삶의 시간을 보내며
떠오르지 않았던 얼굴
바람에 일렁이며 잡히지 않아
마음의 그림에 잠못이루다
꿈을 깨듯 사람이 되어 돌아와 보니
기다리던 그대는 떠나버렸다
II
스스로의 독백을
침묵 속에 뿌려놓은 채
천사를 사모한
내 그림자 한자락도 잡지 않은 채
그대는 그리운
그대 세상을 향해
떠나 버렸다.
하지만 돌아와
빈 길에 선 나는 어찌하나
그림자 한조각도 남기지 못하고
빈하늘 서성인 나는
두번을 만나려
세상을 방황하며
황무지 바람을 맞았던 내 삶은
그대 지난 길 위에
남은 향기 지우며
또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
III
그러다 지금껏 오지 않았을까
흔들리는 풀잎마다
마음을 내려놓으며
새벽까지 별빛을 흔들리게 했던
기다림을 지나며
거기서 빛나는 만남을
믿지 않았던가
저녁하늘 가르는 별빛처럼
만나지 못한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지
왜, 아름다웠던 것일까
그대 때문에
그대의 입술에 덮여
내, 삶의 무게를 지워주던
빛나던 시절 때문에
그래서,
그리움으로 빚어진
풍경 속에서
나는 얼마나 말없는 시간을
보낸 것일까
IV
내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
어머니의 눈빛에 남겨진
애잔한 훈풍이
들녘의 바람을 따라 흐르고
나는 어린시절 길을 나섰네
덧없이 흐르는 시간이
내 운명의 등 뒤에 서 있는 것을
늦은 세월 언덕을 내려오다
만났으니
이제, 길고 긴 그 언덕을 내려오며
간신히 꿈에서 깨어나
그대 향기를 찾으려 하네
삶과 사랑을 짊어지고
나선 길
먼길이라 생각하고 걸어온 길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제 보니
나는 늘 길 가운데 서 있었네
V
그것이 그대인 들 어떠하랴
햇살을 본 시간보다
기다린 시간이 많았던
겨울의 씨앗처럼
잠깐 눈 감은 동안
지나간 바람같은 것이
그대인들 어떠랴
녹슨 풀잎 위로
시간이 무너지고
모든 것은 추억이었네
빗물에 적셔지는
눈빛을 세상에 던지며
내 삶은 길었고
문득보니 짧았노라
그대를 닮은 세상에서
내 삶이
잠시 그대인들 어떠랴
내꿈과 시간이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VI
잠시 구름으로 하늘을 떠돌던
시절도 있었지
땅이 그리웠던 시절
홀로 하늘을 맴돌다
빗물로 땅위에서
그대를 적시고자 했던 시절
부질없이 아름다웠던 시간이
꿈처럼 지나고
때로 슬픔만 남아
잠못이루던 때
아침에 시든 꽃을 만나고
홀로 울었네
VII
눈물을 흘린 것은
나였지만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이
등 뒤에 있었네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슬픈 마음
내 몸속 깊은 곳에서
나날이 죽어가는 작은 생명들
하지만
그들의 빛나는 갈망
새로운 언덕에서 손짓하는
하얀 그림자
나를 살게 한 것은
욕망도
그대를 향한 사랑도 아닌
아침의 바람이었네
VIII
두려움을 가진자
두려움을 이기고
슬픔을 누린자
슬픔을 이기니
슬픔을 가진자여
이제 이별이 찿아 왔으니
그댄 그대 길을 가거라
만나는 것들마다
그대를 조롱하리
비천한 것들도
그대의 슬픔을 보고
그대의 나약함을 꾸짖으리라
하늘 길을 가던 새들도
그 날개짓으로
바람을 밀어
그대를 경멸하리
하지만
아픔을 가진 그대여
눈을 감고
앞으로 가라
세속의 허망함이
그대와 벗들을 속였으니
마음의 길을 따라
그대의 길을 가라
IX
그리고 모든 것을
보내야하리
때로 고통의 자리를
즐겁게 마중하는
무리들을
이제 보내야하리
불행히도
그댄 그들의 손을 잡고
내 손을 놓았었지
죽음 같았네
숨결을 나누면서
무리의 길에 머무는 그대여
그댄 어찌 내 눈길을
잡지 못하는가
그댄 그대의 길로 올라와
바람을 보라
비록 배를 타고 떠나는 내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하여도
2011.5.10
-얀에게 10 -
-2010.11.1. - |
|
나무가 되고 있다 
